싱가포르: 국가 주도 공급과 투기 억제의 완벽한 균형
싱가포르는 주택 문제를 단순히 시장에 맡겨두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택은 국민의 복지이자 국가의 안정과 직결되는 ‘생존 전략’이었다. 건국 초기부터 정부는 토지의 대부분을 국유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주택개발청(HDB)**을 설립해 국민의 80% 이상이 거주하는 공공주택을 직접 공급했다. 이 시스템은 단순한 양적 공급을 넘어서, 국민 모두가 안정된 주거와 자산 축적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다. HDB 주택은 99년 장기 임대 형태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매매가 가능하고 시세 차익을 인정받는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자산의 축적과 동시에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장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다주택자와 외국인에게는 높은 추가취득세(ABSD)**를 부과했다. 이러한 조치는 투기 수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핵심 장치로 작용했다. 즉, **“실수요자에게는 저렴하게, 투기꾼에게는 가혹하게”**라는 명확한 철학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것이다. 덕분에 싱가포르는 주택 소유율 90%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으며, 주택이 불안 요소가 아닌 국가 성장의 안정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단기적인 인기보다는 장기적인 안정, 시장의 논리보다는 공공의 책임을 우선시한 그들의 정책은 오늘날 전 세계 도시 정책의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오스트리아 빈: 사회주택으로 만든 포용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집을 소유하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도시다. 빈 시민의 약 **60%**는 시 정부나 비영리 주택협회가 공급하는 사회주택(Social Housing)에 거주한다. 이 주택들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중산층까지 포함하는 ‘보편적 주거 모델’로 발전했다. 임대료는 시장 시세의 절반 이하로 책정되며, 대부분 장기 거주가 가능해 사실상 종신 임대에 가깝다. 그러나 저렴하다고 품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 사회주택 단지는 수영장, 도서관, 공동 정원, 공동 주방 등 다양한 공용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도시의 미관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빈의 정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소셜 믹스(Social Mix)’ 개념이다. 소득이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한 단지에 섞여 살게 하여, 공공주택이 슬럼화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했다. 이 모델은 1920년대 ‘붉은 빈’ 시절부터 시작되어 10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결과물이다. 주택을 시장의 논리로부터 분리하고, 인간의 기본권으로 접근한 빈의 선택은 주거를 통한 사회적 평등 실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결국 빈의 주택 정책은 단순히 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안정적이고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 도시 복지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철학은 분명하다 —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시사점: 일관성, 공공성, 그리고 투기의 근절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오랫동안 “집은 투자 수단”이라는 인식 속에 움직여왔다. 정부가 규제를 내놓을 때마다 단기적인 가격 조정은 있었지만, 곧 다른 지역으로 풍선효과가 옮겨가며 근본적인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싱가포르가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시장 안정의 핵심은 정부가 주택 공급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한국의 공공주택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고, HDB처럼 체계적이고 일관된 공급 시스템도 부재하다. 이는 주택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을 잃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오스트리아 빈처럼 주거 복지를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닌 중산층까지 포함한 보편적 권리로 확장해야 한다. ‘공공주택 = 품질이 낮은 집’이라는 인식을 깨고, 다양한 계층이 함께 살아가는 고품질 사회주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나아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강화와 투기 억제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손해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투기 수요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싱가포르와 빈의 사례가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다 — 주택 정책은 일관성 있는 철학과 공공의 리더십이 있을 때만 성공한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주택을 자산이 아닌 삶의 기반으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과제: 타이밍과 조율의 문제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방향성 면에서는 세계적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타이밍과 일관성의 부족이다. 마치 음식을 만들 때 끓는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맛이 없듯, 한국의 주택 정책도 시기를 놓칠 때가 많았다.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재료는 훌륭하지만, 조리 순서와 온도가 맞지 않아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셈이다. 시장이 과열된 뒤에 규제를 강화하고, 침체가 시작되면 공급을 늘리는 식의 대응은 결과적으로 악순환만 만든다. 필요한 것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시장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조율할 수 있는 거시적 리더십이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각 악기가 제때 울려야 조화로운 음악이 나오듯, 금융 정책, 세제, 공급 정책, 임대 제도 등이 한 흐름으로 조율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그 조율이 부족하다. 정책이 좋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 간 협업 부족과 정치적 계산이 조화를 방해하고 있다. 이제는 단기 인기보다 장기적인 시스템 설계를 중심에 두어야 할 때다. 시장의 소음을 넘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정과 신뢰의 ‘주거 교향곡’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한국 부동산 정책의 다음 단계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