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기술 사이클이 끌어올리는 대만의 기세
글로벌 경기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보는 지표 중 하나가 대만의 수출 주문이다. 그만큼 대만은 전 세계 IT·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올해 10월 대만의 수출 주문이 전년 대비 25% 이상 늘었다는 소식은 단순한 ‘경기 회복’으로 보기엔 너무 큰 폭이었다. 특히 통신 장비와 전자제품 주문은 각각 28%, 35% 가까이 증가하며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숫자들은 지금 세계가 어떤 국면에 있는지 매우 명확하게 말해준다. AI 서버, 첨단 반도체, HBM, 네트워크 인프라 같은 핵심 분야가 실제로 ‘말뿐인 기대’가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와 주문이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AI 버블 아니냐”는 의심을 해왔지만 수출 통계를 보면 다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수요가 꺾이기는커녕 더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수출 강세가 단순히 한 번의 반등이 아니라 ‘구조적 흐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이 반도체 자급을 이야기하더라도, 고난도 공정과 서버용 칩의 중심은 여전히 대만에 있다. 다만 이런 집중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운다는 이면도 갖는다. 반도체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동시에 정치적 충돌의 중심에도 있다는 뜻이고, 관세와 규제, 무역장벽 같은 변수가 수출 증가와 함께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대만 수출의 급증은 기술 산업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긍정 신호이면서, 공급망 리스크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경고 신호이기도 하다.
(2) 겉은 탄탄하지만 속은 약해지는 미국 노동시장
한편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나왔다. 9월 고용보고서에서 일자리 증가 수치는 예상보다 강했지만, 정작 실업률은 4.4%로 올라갔고 임금 상승률은 거의 멈춰섰다. 이 조합은 겉은 좋아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균열이 생기는 노동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업이 사람을 뽑고는 있지만, 고용의 질과 임금의 압력은 서서히 식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신호는 연준에게 꽤 애매한 과제를 던진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선 금리를 더 오래 높은 수준에 유지해야 하지만, 노동시장이 본격적으로 식기 시작하면 금리 인하 논리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고용보고서는 그 어느 쪽에도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연준의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오히려 장기 금리가 다시 불안해지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시장의 둔화 조짐이 되레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지는, 다소 역설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이 흐름이 일시적이기보다 구조적이라는 데 있다. 미국은 지난 2년간 고금리를 버티면서도 고용을 유지해왔지만, 이제 서서히 임금 상승 둔화·구직활동 증가·일부 산업의 이직 감소 등 경기 식어가는 전형적인 패턴들이 보이고 있다. 즉, 미국 경제는 지금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섞여 있는 회색지대”에 들어가 있다.
(3) 기술의 상승과 금융의 흔들림: 2025년의 이중 구조
흥미로운 것은 이 두 흐름이 결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만의 수출은 기술 산업의 구조적 강세를 보여주고 있고, 미국 고용지표는 금융환경이 다시 불안정해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둘을 합치면 2025년 세계경제는 ‘기술은 강해지는데, 금융·노동은 흔들리는’ 이중 구조로 요약된다. 기술주는 AI·반도체라는 명확한 성장 동력을 갖고 있고, 실제 주문과 실적까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가 더 오래 높게 유지되면 밸류에이션 압력은 피할 수 없고, 금융시장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중 간 기술·관세 갈등은 내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공급망의 긴장도 여전하다. 투자 측면에서 보면, 기술주에 대한 기대는 유지하되 금리 민감도, 현금흐름 안정성, 지정학 리스크를 모두 고려한 균형 전략이 필요해진다. 정책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각국은 기술 투자와 혁신을 가속화해야 하지만, 동시에 노동시장 둔화와 금융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이중 대응’을 해야 한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단순히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일방적인 국면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방향의 흐름이 교차하며 복잡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 그 속에서 대만의 수출 급증과 미국의 고용 변화는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기술 산업은 여전히 전진하고 있지만, 금융 환경이 언제든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다.